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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108가지 결정
  • 108가지 결정
  • 저 자 :함규진
  • 발행자 :페이퍼로드
  • 등록일 :2021.03.30
  • 보유 권수 :3권
  • 공급사 :교보문고
  • 대 출 :0/3권
  • 예약자수 :0명
  • 소속도서관 :통합
  • 추천수 :0
  • 대출 여부 :가능
  • 유형 :epub
  • 지원기기 : PC 태블릿 모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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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소개

★ 우리시대 역사학자 105인이 선정한 한국사 108가지 선택 ★ 10년 동안 꾸준히 판매된 역사 분야 스테디셀러 ★ 본문 디자인ㆍ사진ㆍ캡션을 전면 교체한 리커버 에디션! 고조선 시대 쿠데타에서 21세기 수도 이전 논의까지… 대한민국의 역사는 우리 모두의 손에 달린 선택의 결과다. 대한민국 역사의 주인은 누구인가. 기원전 2333년 단군왕검이 세운 고조선부터 이성계가 건국한 조선 시대까지, 일반 민중은 역사의 그림자 속에 가려져 숨어 살아야만 했다. 언제나 중요한 결정은 왕과 귀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조선왕조 500년이 남긴 것은, 비단 빛나는 문화유산과 선조의 지혜만이 아니다. 조선 시대 최고 법전 『경국대전』에 나와 있듯이 법적 신분을 양반과 천민으로 구분한 양천제가 시행되고 있었으며, 현실에서는 백정에 대한 차별이 극심했다. 민주주의 정치를 지향하는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을까. 법적 신분제도는 사라졌지만, 경제 여건에 따라 부유층과 빈곤층의 계급이 뚜렷하고, 기본적인 노동 권리와 주택 문제마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역사의 주인이라면, 아니 적어도 자기 삶의 주인이라면 마땅한 결정권을 가지고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대한민국의 미래를 또다시 한 명의 손에 쥐어줄 것인가. 이 책, 『108가지 결정』은 고조선 시대 쿠데타에서 21세기 수도 이전 논의까지,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꾼 선택과 결정의 순간을 다룬다. 역사를 ‘신들이 노니는 정원’에서 ‘만인이 살아가는 현실’로 강하시킨 위만의 쿠데타를 시작으로 그 ‘현실’의 주도권이 혈통과 신분을 지나 점차 민중, 그리고 민중의 협의에 의한 헌법으로 옮겨가는 과정이 책 속에 시대 순으로 서술된다. 물론 역사의 결정이 항상 긍정적이지는 않다. 역사가 늘 발전하지는 않으며 현실에서 농담처럼 반복되기도 한다. 통일을 노린 신라의 나당동맹은 우리 역사의 무대를 한반도 남쪽으로 한정시켜버렸고, 의욕적으로 추진한 세종의 세제 개편 개혁은 기득권의 강한 저항과 함께, 끝내는 실패로 돌아갔다. 자신의 몰락을 부른 광해군의 고독한 결단, 세도정치를 열어버린 정조의 오판, 이념 대립에 따른 임시정부의 분열 등을 읽으며 오늘날 한국의 현실을 떠올려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 모든 역사적 결정에서 주체의 변화에 주목한다. “수천 년 한국사의 흐름을 바꾼 역사적 결정을 찾고, 그 의미를 새겨보자”라는 취지에 따라 이이화 선생을 비롯해 박노자, 이덕일, 신용하, 전현백 등 우리시대의 역사학자 105인이 중요 결정들을 선정했고, 이를 시대 순에 따라 총 5부로 나누어 서술했다. 결정은 결코 독립적이지 않다. 하나의 결정이 다른 결정을 부르고,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리고 이 결정들이 모여 역사라는 큰 흐름을 이룬다. 그리고 그 큰 흐름의 주도권이 신에게서 인간으로, 인간에서 모든 인간으로, 다시 인간의 합의에 의한 제도로 옮겨간다. 책은 한국사의 중요한 결정을 통해 5000년 우리 역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시각을 제시한다. 동시에 역사의 면면한 흐름 속에서 오늘이라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도출해낸다. 이 책을 쓰고, 편집하고, 인쇄하고, 독자들이 읽는 시점에도 중요한 역사적 결정은 이루어지고 있다. 어쩌면 10년 정도 뒤에 … 그 때는 지금보다 더 긍정과 자랑에 차서 책을 엮게 될까?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선택과 결정 모두 바로 우리의 몫이라는 점이다. 더 나은 한국을 만드느냐, 마느냐의 역사적 결정은 우리 모두의 손에 달려 있다. - 저자의 말 중에서 모든 역사는 과거가 아닌 현재다! 역사를 외면하는 자는 현실 앞에서 침묵하는 법 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가 아닌, ‘과거의 현재, 현재의 현재, 미래의 현재’ 세 가지로 구분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고 했다. 즉, 과거와 미래를 따로 구분하는 게 아닌, 모든 걸 현재를 기준으로 두고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 또한 과거에 기록해놓은 사료에 집착해 ‘결과’만을 평가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과거의 ‘결정’을 현재의 관점에서 직시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역사를 배우는 이유다. 과거에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결코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 시간만큼 썩어 문드러져 현재에 와서 문제를 키우곤 한다. 최근 정부가 강력하게 주장하는 부동산 정책과 과거 농지개혁을 살펴보자. 현재 정부는 주택을 투기의 목적이 아닌, 거주의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부동산 규제를 발표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정책이 서울의 집값 폭등을 야기했다며 비난한다. 실제로 강남을 중심으로 서울 부동산값은 끝없이 치솟고 있다. 자고 일어났더니 집값이 1억이 올랐네, 라는 말이 더는 농담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일찍이 조선

목차

책머리에 5 제1부 고대 BC 194년 위만의 쿠데타 최초의 쿠데타: 신화의 시대는 끝나고 17 372년 고구려 불교 승인 ‘불국토’로 가는 길 20 395년 고구려의 중원 정벌 대륙을 달리다 25 427년 평양 천도 한반도와 만주 동시 경영의 계기 30 ㆍ한국사 깊이 읽기ㆍ수도를 바꾼다, 시대를 바꾼다 -천도 38 475년 웅진 천도 백제의 멸망을 막은 결단 40 553년 진흥왕의 성왕 배신과 한강 유역 진출 진흥왕이 북한산에서 본 것은 42 632년 선덕여왕 즉위 모란꽃 그림에는 피의 향기가 46 642년 연개소문의 쿠데타 고구려의 혼을 살린다? 50 648년 나당동맹 한반도의 운명을 가른 역사적 결정 54 660년 소정방의 신라 군사 처벌에 반발한 김유신 나당전쟁의 실마리 61 661년 원효의 당 유학 포기 해골 물에서 얻은 것은 64 666년 남건의 남생에 대한 반란 고구려의 멸망을 불러온 형제간 싸움 66 757년 경덕왕의 중국화 정책 동방예의지국으로의 첫걸음 68 846년 장보고 암살 쓰러진 해상왕의 꿈 71 제2부 고려시대 918년 왕건의 궁예 축출과 고려 건국 준비된 쿠데타: 승자가 쓴 역사 77 918년 왕건의 대신라 햇볕정책 평화적 통일을 위한 결단 81 935년 신검의 쿠데타 후백제의 멸망을 부른 아들의 반역 85 956년 노비안검법 실시 최초의 민권 개혁? 87 958년 과거제 도입 900년간 이어온 ‘인재 등용의 혁명’ 90 982년 시무 28조 채택 유교 국가로의 길 98 993년 서희의 강동 6주 획득 한국사 최고의 협상 102 1135년 서경 천도 무산과 묘청의 난 서경에 심은 황제의 꿈 108 1170년 무신의 난 피가 피를 부르는 폭압의 시대 114 1232년 고려 고종의 강화도 천도 국가 극복을 위해? 정권 연장을 위해! 119 1237년 팔만대장경 조판 한국사의 불가사의 122 1260년 원종의 쿠빌라이칸 접견 강화도에서 나와 팍스 몽골리카로 124 1270년 삼별초 항쟁 최초의 민중운동? 128 1285년경 일연의 삼국유사 또 하나의 역사 131 1288년 안향의 성리학 수입 거대한 뿌리 심겨지다 134 1323년 이제헌의 입성책동 반대운동 홀로 나라를 지키다 139 1352년 공민왕의 반원정책 익숙한 것에서의 결별 143 1363년 문익점의 목화 수입 널리 세상을 따뜻하게 하다 147 1374년 공민왕 시해 고려 부흥의 꿈은 저물고 149 1383년 정도전과 이성계의 만남 개인과 개인의 만남? 문과 무의 동맹! 152 1388년 위화도 회군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155 ㆍ한국사 깊이 읽기ㆍ한국사의 정치폭력 167 1390년 개혁세력의 토지 개혁 추진 회귀형 개혁 171 제3부 조선시대 1394년 한양천도 한강으로 물갈이 가자 177 1398년 이방원의 1차 왕자의 난 이방원 vs 정도전 180 1409년 조선왕조실록 편찬 결정 실록 편찬 결정을 둘러싼 갈등 184 1418년 양녕 아닌 세종에 왕위 계승 조선은 어떤 국가여야 하는가? 189 1419년 대마도 정벌 왜구 본거지를 쳐라 192 1430년 세종의 공법 개혁 및 후퇴 국민투표로도 부족했던 개혁 기반 197 1433년 4군 6진 개척 한반도 강역의 완성 201 1434년 세종의 갑인자 주조 위대한 금속활자, 그러나 204 1435년 세종의 숙신옹주 친영 결정 ‘시집살이’의 기원 209 1443년 한글 창제 글 또한 만 백성이 공유할 권리가 있다 213 ㆍ한국사 깊이 읽기ㆍ창조와 발명 224 1453년 계유정난 수양대군 vs 김종서 226 1518년 조광조의 소격서 혁파 무엇이 미신인가? 230 1519년 조광조 일파 제거 젊은이들의 좌절 234 1591년 이순신, 전라좌수사로 임명되다 임진왜란을 막아낸 인사행정 238 1592년 신립의 탄금대 선택 피할 수 있었던 패배 240 1592년 고경명의 금산 선택 한양으로? 고향으로? 243 1592년 여진족의 원군 제의를 조선정부가 거절 병자호란의 불씨를 남기다 247 1596년 동의보감 편찬 결정 독자적 의학체계를 구축하다 250 1607년 쇄환사 파견 다시 내민 화해의 손 260 1608년 광해군의 대동법 실시 200년이 걸린 개혁 264 1614년 이수광의 서양문물 소개 매우 귀중한 ‘주워들은 이야기’ 269 1622년 광해군, 후금에 국서 전달하다 고독한 결단은 배신을 부르고 272 1623년 인조반정 조선은 오랑캐 나라가 아니다? 275 ㆍ한국사 깊이 읽기ㆍ명분이냐? 실리냐? 279 1969년 안용복의 독도 수호 홀로 국토를 지키다 281 1784년 이승훈의 천주교회 창설 취사선택의 실패 286 1791년 신해통공 왕의 필요와 백성의 필요 290 1800년 정조, 사망 직전 김조순에게 앞날을 부탁하다 세도정치의 문을 열다 293 1861년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제작 한평생 걸려 정리한 한반도의 모든 것 296 제4부 근대 1865년 경복궁 중건 경복궁에 비친 낙조 303 1866년 대원군의 쇄국정책 과거에 매달렸던 실용주의 307 1876년 강화도조약 역시 믿을 수 없는 회담 312 1884년 갑신정변 개혁의 쿠데타 : 가장 짧은 쿠데타 316 1894년 동학

저자 소개

저자 : 함규진 저자 : 함규진 첫 전공은 법학이었다. 그러나 대학에 입학해 교수님께 “학문을 시작하는 뜻에서 기초적인 교양과 지식을 쌓으려면 어떤 책부터 읽으면 좋을까요”라고 질문을 드리자 “법대에 들어왔으면 사법고시에 필요한 책만 봐라. 그것 말고는 볼 책이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 후로 왠지 법학 공부에 정이 붙지 않은 나머지, 대학도 학과도 바꾸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한다. 이후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에 입학했고 정치외교학과로 대학원을 마쳤다. 정치외교학과에서도 정치사상을 택했고, 다시 그중에서도 동양 및 한국 정치사상에 중점을 두기 시작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스스로 ‘밥’학과라 불리는 법학과를 버리고 점점 돈이 안 되는 학과로만 발을 돌린 ‘바보’라고 농을 친다. 하지만 그 기간 내내 꾸준히 ‘역사와 그 속의 인간’이라는 한 우물을 파온 그의 저력은 그러한 겸손한 표현이 무색하도록 말과 글에 면면히 드러난다. 언제나 바뀌는 사람들, 그리고 사람들을 바꾸고 마침내는 그 사람들에 의해 바뀌어 버리는 힘인 사상과 역사의 도도한 흐름에 매혹된 그는, 앞으로도 계속 사상, 역사, 그리고 사람이라는 주제를 탐구하고 분석해나갈 것이다. 현재 서울교육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영조와 네 개의 죽음』, 『난세에 간신 춤춘다』, 『벽이 만든 세계사』, 『최후의 선비들』, 『개와 늑대들의 정치학』, 『조약으로 보는 세계사 강의』, 『왕이 못된 세자들』, 『세상을 움직인 명문vs명문』 등을 썼고, 『팔레스타인』, 『죽음의 밥상』, 『유동하는 공포』, 『위험한 민주주의』, 『정치질서의 기원』 등 번역서도 다수 있다.

출판사 서평

시대를 이끄는 지도자들의 영원한 롤모델, 개혁군주 정조의 특별한 리더십과 정치적 기술! 우리 역사상 최고의 개혁군주로 평가받는 정조(正祖)는 신궁(神弓)이었다. 그가 활을 쏠 때면 50발 중 49발을 쏘아 명중시켰다. 그런데, 마지막 한 발은 과녁을 향해 쏘지 않고 허공으로 날리곤 했다. 50발을 모두 명중시킬 수 있었으나 스스로 겸손하기 위해 마지막 한 발을 쏘지 않은 것이다. 여기에는 주역(周易)에 통달했던 정조의 깊은 뜻이 숨어 있다. 주역 점(占)을 칠 때는 보통 시초(蓍草)라고 하는 50개의 산가지를 사용하는데, 그중 1개는 태극(太極)을 상징해 사용하지 않고 49개의 산가지만 가지고 주역 점괘를 뽑는다. 그리고 그 점괘를 통해 세상의 이치와 변화의 숨은 뜻을 찾아낸다. 정조는 여기에 착안해 1발의 화살을 제왕의 산가지로 여겨 아예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여기에 바로 ‘정조의 리더십 코드 5049’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이 책은 정조의 리더십을 49가지의 정책과 실천의 사례로 풀어서 이야기하고 있다. 어찌 그의 리더십과 백성을 위해 한 일이 49가지만 있겠는가? 물론 그도 인간인지라 때로는 실수하고 때로는 격한 언어를 쓰기도 했다. 한편으로 노회한 정치가라는 소리도 듣고 보수적인 군주란 소리도 듣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역사에서 정조만 한 인물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이 땅의 개혁을 위해 매진하는 리더들은 반드시 이 책을 읽어보기를 바란다. 조선 후기의 개혁군주 정조의 드라마틱한 삶과 특별한 리더십 오늘날 우리는 융복합 시대에 살고 있다. 다양한 문화와 사상이 소통하고 과학과 인문학이 만나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본격적으로 다가올 융복합의 시대는 참으로 멋진 세상이 될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우리 시대는 소통이 존재하지 않는 시대이기도 하다. 계층 간의 불화, 지역 간의 불화, 정치의 불화, 나아가 남북 간의 불화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 속에 살고 있다. 한쪽에서는 융복합의 시대라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불통의 시대라고 하고 있다. 조선 후기의 개혁군주 정조는 비극적인 개인의 삶을 뛰어넘어 역사에 이름을 남긴 훌륭한 군주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 이후 자신에 대한 반대 세력들의 온갖 음모와 폐출 위기를 겪었고, 나아가 국왕이 된 이후에도 1777년(정조 1) ‘존현각 시해기도사건’(정유역변) 등 숱한 죽음의 위기를 맞이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조가 당대 개혁군주로서 한 시대를 이끌고, 현재까지 우리 역사상 최고의 지도자로 인정받는 것은 그만이 가지고 있던 특별한 리더십과 정치적 기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리더인 문재인 대통령도 정조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실제로 지난 19대 대통령 선거 당시 마지막 TV 연설에서 문재인 후보는 자신이 대통령이 된다면 정조의 개혁정책을 계승하겠다고 밝힌 바 있으며,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대부분의 정책 역시 정조의 개혁정책을 계승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지난 6월 초, 청와대에서 중장 진급자 16명의 삼정검에 수치(끈으로 된 깃발)를 달아주는 행사에서 한 말은 정조가 마지막 화살 한 발을 명중시키지 않은 이유와 너무나도 닮았다. “삼정검은 뽑아서 휘두를 때보다 칼집 속에 있을 때 더 힘이 강한 법이다.” 끊임없이 단련하고 훈련하여 스스로 군사(君師)로 자리매김하다 군주의 사적 행위는 아무리 사소한 행동이라 해도 곧 공적 행위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조는 말과 행동에 있어 매사 신중하고, 늘 근엄함을 잃지 않았다. 정조는 신료들에게 늘 ‘사중지공(私中之公), 손상익하(損上益下)’를 강조했다. 사적인 일로부터 시작하지만 반드시 공적인 것으로 연결되도록 강조했고, 윗사람은 덜 가져도 아랫사람에게 더 많은 이익이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공적인 일을 하면서 사적인 이익을 취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익을 얻었을 때 함께한 이들에게 고른 분배를 하지 않고 독식하려는 사람들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조는 소통을 중요시했고, 군신공치(君臣共治)를 내세우며 신하들과 함께 국정을 운영하였다. 국왕으로서 사적인 이익을 철저히 배제하고 오로지 공적인 이익만을 추구하며, 누구보다 따스하면서도 친인척과 측근들의 잘못은 추상같이 다스리는 위엄도 보여주었다. 특히 그는 군주로서 엄청난 양의 정무를 소화하면서도 학문에 소홀하지 않았고, 신체 단련도 충실히 했다. 또한 불교와 도교, 그리고 서학(西學)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무조건 배척당하던 그 시대에 정조는 성리학만이 세상을 움직이는 사상은 아니라고 단호히 이야기했다. 성리학, 그것도 주자 성리학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고 배척하고 죽이던 그 시절에 군사(君師)를